지구촌

세계의 역사속 유명한 여성끼리의 결투 7선

오델리아 2018. 3. 2. 07:44

사랑을 쟁취하기 위하여 결국 무기를 들었다.


옛날에는 결투라고하는 것은 신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일대일로 싸워 이긴자는 하나님의 가호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법이 모호하고 구속력이 없었기 때문에, 정당성의 판단을 하나님께 맡긴 결과, 결투를 함으로써 공정하고 정확하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부분 결투는 남자들이 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여성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유럽의 여성끼리의 대결을 살펴보자.



1. 알메리아 브래톡 양 vs 엘핀 스톤 부인(영국)


1792년 런던....친구 사이인 알메리아 브래톡 양과 엘핀 스톤 부인은, 사소한 계기로 큰 싸움을 하게된다. 그 이유는, 브래톡 양이 나이를 속이고 있었던 것을 엘핀 스톤 부인이 알아버렸다는 것.


아마 이전부터 서로 앙금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다툼이 무려 결투로 이어지게 되었다. 서로 페티코트를 입고 싸웠기 때문에 이 싸움을 "페티코트 결투(Petticoat Duel)"이라고 한다.


싸움의 무대는 런던의 하이드 파크. 처음에는 서로 권총으로 총격전을 벌였지만, 총을 만진적이 없었던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서로 말짱하게 승부가 나지않았다.


총알도 다 떨어져버렸기 때문에, 두 사람은 검을 뽑아 대결. 완전히 엉망진창의 결투가 되었겠지만, 브래톡 양의 검이 엘핀 스톤 부인의 팔을 찌르고 피가 흘렀기 때문에, 부인은 항목하였고 모욕한 것을 사죄. 결국 이 결투는 끝나게 된다.


결투를 벌였던 두 사람은, 이후 다시 친구 사이가 되었다는.....



2. 마드모아젤 드 기네스 vs 마드모아젤 디구이욘(프랑스)


파티의 VIP 자리를 둘러싼 여성끼리의 싸움.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사교계에서는, 파티 참석자의 서열이 명확하게 정해져있어, 그러므로 "누가 VIP 인가"를 둘러싼 여성끼리의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자기보다 위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자신보다 아래의 서열이었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 여자를 정원으로 데려가 한바탕 결투를 벌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고 한다. 무기는 주로 칼. 핸드백에 감추기 딱 좋은 크기였던 것이다.


기록에는 마드모아젤 드 기네스와 마드모아젤 디구이욘이라고 하는 두 사람이 파티의 서열을 놓고 결투를 벌였고, 드 기네스씨는 팔에 부상, 디구이욘은 목에 부상. 어느쪽이 승리했는지는 전해지지 않고있다는.



3. 폴린 메테르니히 vs 아나스타시아 키엘만세그(오스트리아)


초 상류층 안주인끼리의 싸움.


1892년 오스트리아의 신문에는, 폴린 메테르니히와 아나스타시아 키엘만세그라는 여자끼리, 리히텐슈타인의 파두츠에서결투를 실시했다고 보도. 메테르니히 부인은 나폴레옹 3세 치하의 주 파리 오스트리아 대사의 아내. 현대에서 말하는 슈퍼  명사의 직위였다.




왜 결투를 하게되었는가하면, 어떤 이벤트로 장식 된 꽃 배열이 메테르니히 부인의 취향에 맞지 않아 자신의 스타일을 관철하기 위해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전혀 의미를 모르지만, 당시는 그런 세세한 장식 하나 하나에 뭔가 의미를 두고, 절대로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초 유명세를 타고있던 여성이 결투에서 죽는 등 그야말로 국가의 수치이므로, 안전하게 충분히 조치를 취하여 결투는 시작되었다. 이 싸움의 결말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고, 메테르니히 부인은 코을 베었고, 키엘만세그 씨는 팔이 잘렸다고....



4. 이사벨라 드 카라치 vs 디암브라 드 파티네라(이탈리아)


남자를 둘러싼 장렬한 여자끼리의 전설의 결투.


16세기에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열렸던 여성끼리의 결투는, 반은 전설화되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전설에 따르면, 이사벨라 드 카라치와 디암브라 드 파티네라는 둘 다 파비오 드제라소라라는 남자를 좋아하게 되어버려, 두 사람은 파비오의 약혼자의 자리를 놓고 결투를 한 것이라고.


서로 좋아하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 싸웠기 때문에 죽기살기로 임했고, 이것이 나폴리의 이야기 거리로 내려오게 되었다는. 또한, 어느쪽이 승리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이 두 사람의 싸움을 모티브로 한 그림이 일부 그려져 있다.



5. 마담 드 포리냑 vs 마담 드 네레스(프랑스)


사랑의 리슐리외 공작을 둘러싼 라이벌 여자끼리의 결투.


18세기 프랑스에서 "사랑을 둘러싼 결투"의 대표 주자는 마담 드 네레스와 포리냑 부인의 결투.


그녀들은 모두가 리슐리외 공작의 애인으로 누가 적합한지 말다툼 끝에 결국 결투로 결판내는데 동의. 무기는 서로 권총을 가지고,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 먼저 마담 드 네레스가 총을 발사했지만, 빗나갔다. 다음 포리냑 부인을 총을 발사했는데, 마담 드 네레스의 어깨에 명중. 마담 드 네레스 부인은 병원으로 이송, 결국 포리냑 부인의 승리로 끝났다.


사투를 벌였지만, 리슐리외 공작은 이긴 쪽을 사랑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투에서 이긴 포리냑 부인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는....괜한 여자들끼리의 싸움?





6. 미스 샤루비 vs 마담 드 아스티에


프랑스와 미국의 페미니스트끼리의 결투.


미국의 페미니스트 미스 샤루비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마담 드 아스티에가, "어느 나라의 여성 의사가 더 나은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결판이 나지않았고, 결국 결투로 승부를 내자고.


서로 15일간 훈련을 실시 한 후, 2명의 페미니스트는 워털루에 모였다. 즉시 칼을 빼고 싸웠지만, 미스 샤루비는 거의 아마추어였기 때문에, 마담 드 아스티에의 칼에 부상을 당해 승부는 결정나 버렸다.


어쨌든 가장 황당한 결투로 기록되어 있다.



7. 마르타 두란 vs 후아나 루나(멕시코)


1900년에 열린 남자를 둘러싼 결투. 이 싸움은 1900년 멕시코에서 열린 여성끼리의 결투이다.


라파엘 미켈메 주최의 무도회에, 당시 가장 그의 애인 후보에 가까웠다고 하는 마르타 두란이라는 여성이 참석했다. 그런데 호색한이기도 했었던 리켈메는 무도회에 참석하고 있던 후아나 루나라는 이름의 여성에게 눈을 빼앗겼다. 리켈메는 후아나 루나에 너무 열중해, 마르타 두란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받은 두란은 무도회 종료 후, 즉시 후아나 루나에게 결투를 신청. 다음날 아침에 두 사람은 검을 들고 싸우게 된다. 무도회에서 두 사람의 대립과 싸움의 조짐을 보고, 이러한 가십을 좋아했었던 사람들이 다음날 이 싸움을 관전하러 모였고, 서로 돈을 배팅하기도...


싸움이 시작되었고, 2라운드에서 마르타는 중상을 입고, 3라운드에서는 다량의 출혈로 움직일 수 없게되어 버린다. 후아나 루나는 검을 든 팔을 높이 들고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양쪽 모두 중상이었기 때문에, 즉시 병원 치료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멕시코 정부는 이미 결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었고, 불법 행위를 한 두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불법 행위로 중상을 입은 두 사람은, 당연히 리켈메로부터도 버림 받았던 것이었다.


이런 경우를 뭐라 설명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