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100년 전에 침몰한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건조 현장 사진

오델리아 2016. 12. 13. 14:42

북대서양에서 빙산에 충돌 해 사상 최대의 해난 사고를 일으켰었던 타이타닉 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해당하는 1911년 5월에 진수식이 거행되어, 그 다음 해인 1912년에 처녀 항해에서 불행하게 침몰했었다.


그 타이타닉의 건조중인 풍경을 소개....


타이타닉호의 조선소는 북 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에 있었고, 타이타닉은 북대서양 항로용으로 계획된 3척의 여객선 중 2호선이었다.(1호선은 올림픽, 3호선은 브리타닉)


거대한 선대




후미편


스크류와 배의 방향타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작업자들.


당시 대서양 항로로, 타사와의 경쟁상, 1척으로는 충당 못할것으로 생각해, 상시 2척을 교대로, 1척을 예비 선박으로하여 세 척에 의한 운영 체제가 계획되었었다.


그 후 완성된 3호선 브리타닉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병원선으로 징용당했는데, 결국 침몰했다.


건조 개시는 1909년 3월로, 3년의 세월과 1만 5천명의 인원에 의해 완성되었다.


스크류의 크기와 사람의 비교.


본체 부분은 거의 완성, 무엇이 부족하냐하면.....


이렇게....굴뚝!


4개의 굴뚝 중, 보일러와 연결된 것은 3개로, 4번째는 디자인에 더미적인 존재로, 주방의 환기와 증기 터빈의 환기만을 사용한 것.


실제로 굴뚝으로 사용되어 검은 연기를 내뿜는 것은 3개 뿐이었다고.


자매선 올림픽과 타이타닉이 나란히. 쏙 빼닮은 듯하지만, 나중에 만들어진 타이타닉은 1등 객실이 더 추가되었기 때문에 미묘하게 좀 더 커지게 되었다는...


두께 2.5cm의 강철 외벽 2,000장을 사용하여, 절대 부서지지 않는 난파선이라고까지 불린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


그러나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의 지명도는 1호선 올림픽 호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존재였다고.


그리고 영화 등으로 알려져 있는대로, 이듬해 2220명의 승객을 태우고 처녀 항해에서 침몰, 약 1500명이 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