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1차 세계 대전 중, 미국의 다람쥐와의 전쟁이란?

오델리아 2017. 8. 7. 14:23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미국에서는 젊은이들이 국내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 대상은...바로 다람쥐.


해충으로 여겼던 다람쥐와 싸울 수 있도록 징병되었다는 미국의 젊은이 들...



1918년 4월 미군 보병이, 프랑스에서 독일군과 싸우고 있을 때, 캘리포니아의 아이들은 국내에 숨어있는 적과 싸우기 위해 징병되었다는 것.



"미국 내에 적이있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참호 속에서 싸우고있는 상대보다 아마도 더 파괴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예 감독관 조지 H 해커는, 이러한 경종을 울리고, 열심히 아이들을 모집했다. 학교 단위로 군대(?)를 조직하고, 일치 단결하여 "다람쥐 군단"을 격파하기 위해 아이들을 독려했다.


- 캘리포니아 최초의 시도, 다람쥐 vs 아이들의 싸움


어린이들에 의한 이 십자군은, 캘리포니아가 해충 인 다람쥐를 제거하려고 고안 한 7일간의 리스트 위크 이벤트의 일환이다.


이 캘리포니아주의 농민과 목장주들은, 오랜기간 동안 다람쥐와 싸워왔다. 다람쥐는 전염병 등 질병, 특히 동맥 전염병을 매개하는 원인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땅속에 구멍을 파고 사는 이 작은 동물은(교목성 다람쥐와는 다른 것이다), 연간 약 3000만 달러 상당의 작물을 들쑤셔 버렸다는. 이것은 현재의 환율로 계산하면, 약 48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아이들아! 음식을 지키기 위해 다람쥐를 죽이지 않으면 안된다"


<학생들에게 다람쥐 제거를 독려하는 만화>


- 캘리포니아 최초의 시도, 다람쥐 위크


이 리스트 위크는 다람쥐의 대량 제거를 노리는 국가의 첫 시도였다. 1918년 3월 국가 원예 위원회의에서 곡물을 잠식하고 있는 다람쥐를 제거하기 위한 운동이 공지되었다. 그것은 바로 다람쥐 요리를 먹자는 것. 


캘리포니아에서는 이 운동을 위해 비상 전시 기금에서 4만 달러를 차용했다. 여기에는 대대적인 홍보 비용도 포함하여 3만 4000장의 포스터가 배치되었고, 50만장의 전단지도 배포되었다.


<다람쥐 위크 포스터. 다람쥐가 독일군 철모를 쓰고있다>


- 캘리포니아의 다람쥐 전쟁은 대 독일전과 연장선상에...


캘리포니아의 다람쥐 전쟁은 1년 전에 미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의 연장판으로 계획되었다. 미래의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당시 음식 담당 행정관이었지만, 해외 부대를 지원하는 대량의 음식을 지키기 위해 이 다람쥐 전쟁을 심각하게 지지했었다는 것.


<농부들에게 다람쥐를 죽이라고 어필>


5월 4일, 이 다람쥐 잡기 작전이 끝날 때까지, 캘리포니아 전체에서 아이들은 10만 4509마리의 꼬리를 제출했지만, 이것은 아마 대략적인 수치였을 것이라고...




이 이벤트가 끝난 후에도 아이들의 다람쥐 잡기는 끝없이 계속되었다. 그해 후반에 진행된 라센 카운티에서 한 소녀가 3780 마리 분량의 다람쥐 꼬리를 모았고, 또한 소년은 3770마리의 꼬리를....


<캘리포니아 전역 상점 창에 붙여진 포스터>


- 지금은 그 번식력으로 전국 곳곳에 존재하는 다람쥐


캘리포니아 다람쥐 위크는 대성공이었다고 생각했다. 다람쥐가 일소 된 지역에서는 농작물 밭이 활력을 되찾았다고 하니...



그러나 종합적으로 승리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로부터 1세기 가까이 지났지만, 다람쥐는 유행했고, 번식력이 강해 아직도 엄청나다.


1918년의 다람쥐와의 전쟁에서 왕성한 군사력은 아직 소멸하지 않았다. 지금도 캘리포니아 대학의 사이트에서는 헬멧을 쓰고 바주카포로 조준하는 다람쥐의 이미지에서 다람쥐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고 있다. 


아직 서부 전선이 완전히 정상을 찾은 것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