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1차 세계대전, 독일군과 영국군의 크리스마스 휴전

오델리아 2017. 4. 11. 15:46

1914년 12월 25일,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 후 첫 번째 크리스마스.


서부 전선에서 철조망을 사이에두고 영국군과 독일군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날 독일군의 최전선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노래가사가 흘러나오면서, 군인들이 크리스마스 트리에 촛불을 밝힌다.



그러자 대치하고 있던 적군도 자발적으로, 정전 명령을 내리고 어제까지 서로 싸우고 죽이고 있었던 양군이 중간 지대의 지점에서 서로 얼굴을 맞댄다. 서로 손을 잡고 죽은 사람을 찾아 매장해주고, 초콜릿, 과자와 술, 담배 등 배급 제품 및 선물 교환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크리스마스 휴전"이다. 그러나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에 대한 공식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전장의 최전선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난 비공식 휴전이었기 때문.




이러한 계기는 한때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크리스마스 휴전을 천주교에 호소 한 적이 있었다고 말해지고 있다. 독일은 수락했으나, 프랑스, 벨기에는 국토를 뺴앗긴 마당에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다. 법안을 발의 한 것은 독일 측으로, 먼저 초를 밝혀 크리스마스 트리가 밤하늘을 밝혔다. 이렇게 해서 영국군과 독일군에 의한 친목회가 이루어졌다는.




영국 베드포드셔 연대와 독일 군인은 전장에서 축구 시합을 벌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축구공이 철조망에 박혀 펑크나는 바람에 축구는 종료되었다고....





당시의 모습을 영국군의 J.퍼거슨 상병은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고.....


"악수를 하고 서로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했다. 그 후는 마치 몇년지기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그냥 무인 지대의 중앙 철조망 사이에 우리와 프리츠(독일군)는 서 있었다. 프리츠 중에는 영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통역을 해주고... 마치 거리에서 그룹을 짜고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으로.



곧 A 소대 전원이 나왔다. 그 후는 마치 전선 전체에 이어진것처럼 모두들 나오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웃음 소리가 들렸고, 담배불이 여기저기 불을 밝히고. 서로 담배를 교환 한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룹은 몸짓으로 뭔가 열심히 설명하기도 했다.




몇 시간 전까지 서로 죽이고 죽든...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독일 군인은 전장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을 제창했다. 영국 군인도 영어로 응했다. 그리고 서로 토미(영국병), 프리츠라고 서로 서로 참호에서 불렀다. 영국 병이 위스키를 주고, 독일 병은 소시지를 내밀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어느 지점에서 장교간에 휴전이 합의 된 기간과 서로 보행 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졌다. 크리스마스 휴전은 전선 각지에 확대되었고, 그리고 전투는 며칠 후 다시 재개되었다.



그러나 서부 전선에서 크리스마스 휴전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되었다. 영국군은 상층부에서 적과의 친절한 접촉, 비공식 휴전을 엄격히 금지하게 되었고, 그 다음 해부터 크리스마스 기간에 영국군은 오히려 포격의 빈도를 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휴전 후, 제1차 세계 대전이 치열해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