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세계 최강의 눈부신 전과를 올렸던 전사 톱10

오델리아 2017. 4. 18. 07:00

역사에 등장하는 국가와 제국의 파워는, 그 병사의 강도와 비례했다.


미래 성장과 권력은 정예들이 전장에서 발휘 된 힘을 보면, 대략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최강의 전사들 중에서도 특히 정예라 여겨지는 세계 각지의 강자들을 10개 집단을 간추려 보면...


10. 중세 기사


처음 기사가 등장 한 것은 8세기 샤를 마뉴의 통치시대. 9세기에는 많은 기사와 귀족이 왕으로 부터 영토를 받고 그 대가로 유사시 전쟁에 나섰다.


기사의 대명사라고하면 말을 타고 창을 쥔 모습이랄까..하지만 14세기가 되자 기사가 도보로 싸우게 된 나라도 있다. 중세 기사라고해도 시대에 따라 상당히 모습이 다른 것.


헤이스 팅스 전투에서 노르망디의 기사, 팔레스타인의 기사단, 중세 후기의 풀 플레이트 아머를 익힌 기사는 장비면에서 크게 다르다. 유럽에서 플레이트 아머가 가장 많이 사용 된 것은 풀 플레이트 아머가 개발 된 15세기 말~16세기 초였다. 이것은 고딕 양식의 남부 게르만 스타일과 화이트 북부 이탈리아 스타일로 나뉘어 진다. 또한 대륙의 주류 스타일과는 별도로, 영국식도 등장한다. 기사의 무기는 랜스, 나가라 무기, 둔기, 칼도 사용했지만, 전장에서는 보조적인 것이었다.



9. 몽골 궁병


몽골의 궁기병은,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의 유목을 하던 유목민에서 탄생했다. 정착 사회를 형성한 해안 지역과는 달리, 임시 거처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이동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유목민의 남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마상에서 보내고, 말은 자신의 팔다리나 다름없었다.


궁기병이 사용한 활은 축이되는 나무 프레임에 동물의 힘줄 층과 뿔층을 설치한 합성 활이다. 마상에서도 취급하기 쉽도록 짧게 설계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기는 힘은 45kg라는 강력한 것이었다고 한다.



8. 잉글랜드의 장궁병


1415년에 영국과 프랑스가 격돌 한 아쟁쿠르 전투는, 잉글랜드의 장궁병이 올렸던 전과로 가장 유명한 것일 것이다. 헨리 5세가 이끄는 잉글랜드 군의 장궁병 부대는 3배 가까운 프랑스 군의 중장기 병을 압도했다.


중세의 활 당기는 힘에 대해서는 여러설이 있으며, 90~110 파운드(40.8~49.8kg)라는 설이나, 더 무거운 150~160파운드(68~72.5kg)라는 설이 있다. 이러한 활의 취급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잉글랜드의 장궁병은 매우 강력한 활을 취급하기 위해 훈련된 전문적인 군인이었던 것이다.



7. 제노바 석궁병


바레스토리에리, 제노베지는 제노바 공화국의 유명한 군단이었다. 이탈리아 세력과 외세의 어느쪽에 대해서도 용병으로 취급, 그들은 숙련된 병사인데다 비교적 다수의 병사를 동원 할 수 있었던 것도 보탬이되었다. 전문적인 석궁병을 정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제노바의 해양 정책에 기인한 것 같다.


제노바는, 배에 일정 수의 석궁병을 승선시킬 것을 요구했다. 물론 그러한 법률이 있더라도 그대로 준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노바가 해양 패권과 교역면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석궁병이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들은 대형 방패로 몸을 지키면서 싸웠다. 장궁보다 가벼운 힘으로 취급하는 석궁이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6. 스파르타 전사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의 국가이다. "스파르타 교육"으로 알려진 특징적인 군사 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도시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장 보병이 주력 이었지만, 그 교육 제도 덕분에 고대 그리스 최강의 군대를 자랑했다.



5. 페르시아 불사 부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정원 1만명의 중보병의 정예. 불사 부대로 꼽히는 것은 매우 영광이었다. 그 이름은 헤로도토스가 아타나토이(불멸의 뜻)라고 불렀던 것이 기원이며, 오늘 불사 부대에 대해 알려진 것은 대부분이 그의 기술에 힘입었다.


헤로도토스가 아타나토라고 부른 것은, 누군가가 죽거나 부상당하거나 하면, 즉시 다른 병사가 보충되기 때문이다. 적으로서는 항상 일정한 수의 병사가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것은 불멸과 부활을 연상시켰을 것이라고...



4. 마오리 전사


용기와 용맹으로 알려진 마오리 부대. 수백 명 단위가 되는 것은 드물고, 100명 미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전사는 남성이지만, 여성 전사도 있었다.


마오리 전사는 보통 새벽에 싸웠다. 매복과 기습에 능하고, 뉴질랜드 열대우림에 소리없이 녹아들어 있다. 다음과 같은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 와하이카 : 나무, 뼈, 연옥으로 만든 납작한 곤봉 같은 것.


- 오티아테 : 접근전에서 사용된 짧은 곤봉


- 타이아하 : 옆에 흠이 붙어있어 적의 무기를 얽어매어 떨어뜨릴 수 있다.


- 따오기 : 1.5미터 이상의 곤봉





3. 바이킹


중세 초기의 역사에 있어서, 북방의 군사, 중상주의 정정책, 이민 등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현재 바이킹의 이미지는 상당히 스테레오적 타입이지만, 본래의 바이킹은 약탈을 주로 일삼았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대부분을 고향에서 보낸 어부와 농부들이다. 하지만, 여름이되면, 지역의 리더의 소집으로 약탈, 무역, 이주할 토지 등을 찾아 바다로 나선다.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은 "바이킹"이라는 용어가 인종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바이킹으로 해서 해양 원정을 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적인 장비는 창, 방패, 도끼, 칼과 쇠사슬 등이다.



2. 일본의 사무라이(무사)


해외에서는 사무라이는 "봉건 사회 시대의 일본을 대표하는 전사"라는 인식. 실제로 고대에서 중세까지의 일본의 관인 신분 호칭 또는 거기에서 발전으로 생긴 무사의 별칭이다.


일본도의 취급에 능하고, 전장에서 활과 창을 사용했다. 또한 포루투갈과의 교역을 통해 총도 입수하게 되었다.



1. 로마 군단


로리카 세그멘타타를 입은 로마 군인들은, 고대의 전쟁의 가장 상징적 인 모습일 것이다. 장비와 역할은 시대와 함께 크게 바뀌었다. 제정 로마 후기가 되면, 장비는 상당히 다르고 그리스 풍의 방패와 창으로 그라디우스로 변화했다.


그 규율을 중시하는 자세와 조밀 한 진형으로 싸우는 전법은 전설이었다. 특히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고도로 훈련된 직업적인 중장 보병이 탄생, 진군, 전투, 건설, 정찰 등의 임무를 해내었다. 종군 기간은 25년. 로마 시민이어야 하는 조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