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베를린 장벽에 얽힌 비극적 스토리 10가지

오델리아 2017. 10. 11. 14:53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정점에 있던 1961년 8월 13일 동독 정부에 의해 건설 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가르는 전체 길이 160킬로미터의 콘크리트의 두꺼운 벽이다.


1989년 11월 10일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1990년 10월 3일, 동서 독일이 통일 될 떄까지 "반 파시스트 보호 성벽"이라고 한 이 벽에는, 감시탑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철조망에는 수많은 함정이 장치되어 있었다.


30여년 동안 이곳은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넘어가려고 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었다. 이곳에 얽힌 10가지의 비극적인 스토리를 살펴보자.


10. 많은 사람 앞에서 죽은 젊은이


18세의 피터 헥터는, 단지 서독의 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었을 뿐이었다. 계획은 단순한 것으로, 친구와 함께 기회를 노리다가 전력으로 달려 벽을 뛰어 넘어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친구는 성공했지만, 피터는 보초병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장벽 서쪽에서는 병사와 기자 등 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보고있었다. 피터는 누운 채 한 시간 이상 고통에 몸부림쳤지만....불과 몇 미터 거리에서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숨을 거두자, 동독 군인이 시신을 안고 사라졌다는.....


9. 죽음의 터널


베를린 장벽이 있던 시대, 터널로 동 베를린에서 서 베를린으로 넘어가는게 보통이었는데, 서쪽에서 동쪽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남자가 실제로 그렇게 했었다. 동 베를린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탈출 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동독으로 숨어들어 갔을 때, 터널 끝에는 무기를 가진 보초병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내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배반한 것이었다. 한 사람은 대기하고 있던 보초의 총에 맞아 죽었고, 한 사람은 체포되어 10년 형을 살았다는....


8. 익사 한 아이들


6세의 안드레아스 젠크는,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물속에 빠져버렸다. 그곳은 순시선과 감시탑에서 많은 군인들에 의해 경계되고 있는 장소였다. 동독 측의 병사는 아이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쪽의 구조를 방해했을 뿐만 아니라, 수색하는 소방대원에 총까지 발사한 것이었다. 이 상황으로 추가로 4명의 아이가 목숨을 읽는 사고로 이어졌다는 것....




7. 모범적인 국경 경비에게 주어지는 메달


베를린 장벽에서 근무하는 것은 진짜 군인으로, 그들은 빛나는 메달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가장 악명 높은 것 중 하나가 모범적 인 국경 경비에 대한 메달이다. 이 메달은 넘어가려는 시민을 확실하게 사살하면 받는 메달. 


장벽에서 일어난 죽음에 대하여 체포 된 경비병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그들의 임무는 한 사람도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 뿐. 메달을 받으면 더욱 좋고.


6. 베를린의 토끼


장벽 사이의 소위 "죽음의 함정"에서, 토끼가 번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인간에게 방해받지 않고, 토끼는 자유롭게 번식하며 살고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독일 사람들에게는 굉장한 사건이었지만, 토끼들에게는 사형 선고와 다름 없었다. 흩어져 지내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무수히 밟혀죽었다는...그리고 덤불로 도망간 토끼들도 결국 굶어 죽었다는. 


5. 근면 한 학생


베른트 렌사는, 베를린 대학에 다니던 22세의 학생이었다. 장벽이 세워진 날, 그는 남겨진 대학에 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학업을 계속하고 싶었던 그는 장벽에 빨래 로프를 사용하여 서독으로 넘어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베른트의 계획은 경비병들에 의해 막혀 서독을 향해 살려달라고 외치며 저항.


즉시 서독측에서는 임시 변통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에게 뛰라고 촉구했지만, 비극은 결국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끝끝내 점프에 실패하여 그는 사망해버렸다는.


4. 쓸쓸한 장례식


베를린 장벽은 많은 가족들을 갈라놓았다. 그래서 모두 벽을 넘으려 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다. 비록 가족이 벽을 넘어려다가 죽어도, 그 장례식에 나오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엄격한 국경 통제가 있었다. 사망자는 대부분 신원 불명자로 매장되는데, 클라우스 부루스케도 그랬다. 그의 어머니와 7명의 형제들은 그가 죽어도 또한 만날 수 없었다.


3. 평범한 군인들


서독측에서는 악마같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경 경비 군인들은 사악하다고는 해도, 자신의 직무를 완수 한 본질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몰려든 아이들이 근무를 서고 있던 국경 경비대 군인에게 무기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병사는 친절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설명해주다가, 뜻밖에 오발 사고로 근처에 있던 13세의 볼프강 그레 소년이 사망해버렸다. 그 병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2. 이름없는 희생자


베를린 장벽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조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그들의 행보를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만 신원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이 남성은 여럿이 보는 앞에서 익사했지만, 서독측도 동독측도 몰랐다는.


수십 년에 걸쳐 학술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이 남성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않다. 죽음이 사람에게 일어나는 최악의 것이라면, 아무도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고, 완전히 무연고 사체가 되는 것은 새로운 의미에서의 불행일지도 모른다.


1. 우연히 자신의 아이를 질식시켜 버린 어머니


클라우스가 트럭 화물칸에 숨어있는 동안, 두 사람은 긴장하고 있었다. 트럭 저편에서 들려오는 경비병 들에게 들키지 않게하기 위해 손으로 아이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가 기관지염에 걸려있어 코로 숨을 쉴 수 없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트럭은 어찌 어찌하여 무사히 통과하여 서독에 도착. 어머니는 밝은 표정으로 일어서려 했지만,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