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천하 무적 칭기즈칸 군대의 숨은 비결

오델리아 2017. 5. 7. 16:36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했던 인물이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몽골의 칭기즈칸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이렇게 거의 중앙아시아와 유럽 지역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정복했을까? 용맹한 군인들의 수가 많아서? 아니면 탁월한 무기?


불과 8만의 군대로 세계를 정복한 그들의 괴력. 그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칭기즈칸도 원래 귀족의 가문으로, 그가 9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독살되었고, 가족들은 모두 포로가 되는 신세가 된다.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테무친(칭기즈칸)은 귀족들에게 고통받는 몽고의 하층민들과 약소 부락의 고통을 알게되었고, 이 때의 경험은 그에게 귀중한 교훈으로 남게된다.


그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포로 생활에서 탈출, 귀족들에게 맞서기 위해 노비, 대장장이 등 초원의 민중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하여 힘을 키워 나갔다. 이에 기존 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여, 귀족들은 즉각 연합군을 형성하여 테무친을 공격.


그러나 테무친의 평민 군대는 귀족 군대를 격파했을 뿐만 아니라, 자잘한 부족들을 하나 씩 격파하여 결국 몽고 평원을 통일 시킨다. 1206년 마침내 그는 칭기즈칸이라는 칭호를 받고 초원의 패자가 된다. 이후, 여진족의 금, 거란족의 요, 한족의 남송을 차례로 격파. 서방으로는 동유럽까지 진출. 로마 교황청도 사거리에 두었으나 칭기즈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만약....칭기즈칸이 죽지않았다면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 것이다.


그럼, 왜 칭기즈칸의 부대는 세계 최강이었나?




첫째, 칭기즈칸의 군대는 평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병사들은 부족을 단위로 조직된 것이 아니라, 칸의 명령에 따라 만 호, 천 호, 백 호로 편제되었다. 이에 따라 각 부족장들의 권한은 약화되었고, 중앙집권이 이루어졌다. 지휘관은 철저히 능력 위주로 선발, 무능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그밑 부하로 넘겨졌다. 실제로 유명한 장군 중에는 목수, 양치기, 대장장이, 노비가 많았었고, 이들은 신분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전쟁터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는.



둘째, 칭기즈칸은 적 내부의 반목을 절묘하게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개방적인 종교 정책을 폈기 때문에, 각 종교가 엉켜있는 중앙 아시아에서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세째,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 초원을 오가며 무역을 하던 국제 상인들의 활동을 장려하고, 안전을 약속함으로써, 이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칭기즈칸 군대의 승리만이 상업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판단한 이들은, 각 민족의 국내 정세에 관련된 정보를 아낌없이 칭기즈칸의 군에게 넘겨주었다. 칭기즈칸은 또 이들의 입을 통해 몽고군에 대한 과장된 소문을 퍼뜨리게 함으로써 싸우기도 전에 적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칭기즈칸의 개인적인 능력과 당시 국제 상인 조직의 뒷받침이 결부되어 전무후무한 정복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이다. 칭기즈칸은 성격이 불같았었지만, 행동은 매우 신중했고, 충동에 자신을 맡기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어릴적부터 개를 무서워하는 나약한 면도 있었고, 큰 싸움을 앞에두고는 적의 잘못을 늘어놓으며 하늘의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었다. 칭기즈칸은 생애 마지막 원정이 된 탕구트 정복을 끝낸 후 1227년 8월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 사냥 도중 말에서 떨어져 입은 상처때문에 죽었다. 또는 전투 중 무릎에 맞은 화살 때문이라고 하는 등 여러가지 설이 많다. 이 밖에도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등...


그가 사망하자, 남은 원정 계획을 취소하고, 즉각 귀국을 결정했다. 


죽음을 비밀로 하라는 그의 유언 때문에, 몽고로 돌아가는 길에 장례 행렬을 목격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그 자리에서 처형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