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2차대전 당시 나치 공군의 신무기 개발 배경

오델리아 2017. 10. 31. 08:39

독일 제3제국이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공군의 재건에 발을 디딘 것은 1935년 3월.


제트 엔진의 개발을 진행시키고 있던 독일은, 다음에 로켓 엔진의 실용화에까지 손을 뻗으려고 하고 있었다. 1931년에 데사우(Dessau) 기지에서, 액체 연료 로켓의 시험 발사에 성공하고 난 뒤 2년이 경과, 이제는 파일럿의 탑승이 검토되고 있었던 것이다.



육해 양군은 종래의 군수 산업이 연구 기관을 주도했었던 반면, 항공기 산업은 신흥이었던 괴링 원수가 직접 진두 지휘를 맡아, 정부, 공군성이 주도하고 연구 개발에 전력을 기울인 것으로 차이가 컸다.


그 중 하나는, 여지껏 대립해왔던 슈페아 군수 장관을 견제하기 위해, 괴링이 연구 기관을 장악 할 필요가 있었지 않은가 추측하고 있다. 로켓 엔진은, 미리 내부에 통합 산화제를 연료와 혼합 연소시키는 방식으로, 공기를 필요로하지 않기 때문에, 수중이나 대기권 밖에서도 추진 가능했다.



액체 로켓의 구상은, 러시아 황제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처형 된 치올콥스키가 고안했다는 것이 통설로 되어있다. 이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입증 한 것이 미국의 고다드.




그러나 1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함께 개발은 좌절되고 말았다.


독일에게는, 행운이었다.


<괴링>


고다드와 병행, 독일에서도 헤르만 오베르트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1917년의 시점에서 당시 육군성에 로켓의 무기화를 진언하고 있었다고 한다.


로켓에 주목 한 육군 병기 실험부는 실험을 거듭하여 1942년에 V2로 결실을 맺는다. 파리는 물론 런던까지 사정 거리에 두고, 14미터의 거구에 1톤에 달하는 고성능 폭약을 탑재 한 "궁극의 무기"의 미사일이 탄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히틀러 총통은, V2 보다 폭격기에 의한 공습 작전에 집착하고 있었던것 같지만, 이 새로운 무기의 특성을 슈페아로 부터 전해듣고 변심. V2는 런던, 벨기에의 안트베르펜 공격에 거의 집중하는 형태로 실전 투여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연료의 공급이 따라 가지 않게 되어 버린다.


계획은 5천기를 발사 할 예정이었지만, 실제로는 60% 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V2>


한편, 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을 기대하면서도 이루지 못했던 해군도 미사일로 정책을 전환했다.


20년대부터, 파울 슈미트가 연구 해 온 펄스 제트 엔진은, 개폐 밸브의 작용으로 일정 시간마다 폭발이 순환하는 방식으로, 슈미트 자신은 먼저 공중 어뢰의 추진 방식으로 제안했다.


30년대에 들어서면서, 피젤러 사에 위착, 프로토 타입이 될 Fi103이 제작. V2와 달리 짧은 날개를 갖춘 짜리몽땅 한 형태의 비행 병기였다. 여기에서 발전한 양산 타입이 V1이다.




1944년 6월 13일부터 V1 공격이 시작되었다.


길이 8미터 정도, 시속 640킬로미터로 최고 고도는 2킬로미터, 사거리는 최대 400km에 이르렀다.


V1은 상당 부분이 나무로 제작, 비용이 저렴했다. V2는 V1의 7배의 비용이 필요했고, 시간도 3배 이상 걸렸다고 한다. 이미 부족했었던 연료를 놓고봐도 V1이 V2에 비해 실효성이 더 높았다.


또한 V1은 무선 유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전파 방해되는 걱정도 없었던 것이다.



같은 무기가 병립하는 이 이상한 상황은 오직 공군과 육군의 대립에 기인한 것... 공군은 V1을 비행 무기로 간주했고, V2를 총알로 생각한 육군은 서로 생각차이가 많았던..


1944년 여름, 공군성 개발 책임자에게 엄명이 내려졌다.


연합군의 격렬한 공습에 대항하기 위해, 요격기의 제작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것도 저렴하면서도 빠르게 제작되는 것으로...전국은 상부의 핍박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고육지책으로 진언 한 것이 실로 독특한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먼저 음속 근처까지 도달하는 로켓 추진식 항공기에 미사일을 장착, 상공에서 적기의 진로에 미사일을 발사한다. 이것은 발사대에서 수직으로 발사되어, 지상에서 레이더로 제어된다.


적기가 조종사의 시야에 들어오면, 수동으로 조작하여 목표물에 접근. 기수의 로켓 탑재부를 분리하면서 급선회. 그대로 밑으로 강하, 안전한 고도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한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다.



게다가 기체도 회수하여 재사용 할 예정이었다고 하니....


그러나 탈출 준비를 위한 준비작업이 조종사에게는 상당히 위험했다. 사실, 단 한번의 유인 비행 실험 발사 후 불과 150미터에 도달하니 바람막이가 손상, 기체도 심하게 손상.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다 보니 삽질을 계속하다가 결국 종전 전에 제트 엔진을 갖춘 호르텐 Ho229를 개발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과학 기술을 보유했었던 나치 독일. 나치에 의해 막강한 신무기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다른 주변 국가들을 공포에 떨게 했었다. 워낙 연합군들의 파워가 강했기 때문에 독일이 패전하게 되었지만, 솔직히 1대1일 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