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역사상 유명 인물이 개명을 한 몇가지 이유

오델리아 2017. 6. 9. 15:42

인생은 여러가지...개명의 이유도 여러가지.


세계사의 위인은 현대인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러저러 한 이유로 이름을 바꿔온 것 같다. 


너무 자주 이름이 바뀌면 좀 불편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어린이의 경우 아명에서 어른이 되면 제대로 된 이름을 받거나, 위대하게 되면 또 훌륭한 이름을 받거나 붙이기도 한다는....


인생의 무대에서 자칭 이름을 바꾸어 가는 것은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느낌이 있고, 개인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역사상의 위인들은 어떤 이유로 이름을 바꾼 것일까...좀 궁금하다는~


1. 넬슨 만델라(1918~2013, 개명 전 이름 : 호리샤샤)


영국인 선생이 부르기 쉽도록 개명.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웅 넬슨 만델라에게는 많은 존칭이 있지만, 그것은 그가 흑인 해방 투쟁을 위해 싸운 후 흑인 최초의 대통령이 된 가운데 붙여진 것.


그의 어린 시절 이름은 "호리샤샤"라고, 직역하면 "나뭇가지를 흔드는 자". 그 이름의 속뜻은 "말썽 꾸러기"라는 뜻이었다.


호리샤샤 소년은 영국인이 운영하는 감리교 미션 스쿨에서 공부앴는데, 그곳에서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세레명을 주고, 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통례였다. "호리샤샤"라는 이름은, 영국인이 읽기 어려운 이름이었으며, 선생에 의해 넬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2.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 개명전 :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비밀 경찰을 피하기 위해 개명.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인 소련을 세운 레닌은, 당연히 불법 운동에 관여했기 때문에 다수의 개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였지만, 정치 활동을 시작하고 6년째 인 1901년 유배지를 떠돌아 다닐 때 근처를 흐르는 레니 강 이름을 선택, "레나 강의 사람=레닌"으로 칭하게되었다.


또한 시베리아에 유배되어 있었을 때, 레프 트로츠키도 같은 시기에 가명 인 "트로츠키"라고 자칭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전에 있었던 형무소의 교도관 이름"이라고 하고,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았다.


3. 율리시스 S 그랜트(1822~1885, 개명전 : 하이럼 율리시스 S 그랜트)


육군 학교 입학시에 잘못 등록된....


그랜트는 남북 전쟁의 영웅으로 제18대 미국 대통령이기도 한 인물. 뛰어난 전술, 전략을 가지고 탁월한 리더십으로 북군을 이끌어 전장에서 전공을 세웠다. 군인으로서는 성공했지만, 대통령이되고 나서는 부패와 인디언 정책의 실패로 인기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랜트는 일반적으로 "율리시스 S 그랜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본명은 "하이럼 율리시스 S 그랜트"라고 한다.




왜 이름이 바뀌었는가 하면, 그가 17살때 토마스 해머 의원으로부터 웨스트 포인트 육군 사관학교의 추천을 받았지만, 해머 의원은 실수로 "율리시스 S 그랜트"라는 틀린 이름을 등록하고 말았던 것.


그랜트는 즉시 그것을 깨달았지만, 이름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 비밀 입학이 탄로날까 두려워 그냥 그대로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4. 하일레 셀라시에(1892~1975, 개명전 : 라스타화리 마콘네)


"아프리카의 제왕"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개명.


에티오피아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의 본명은 "라스타화리 마콘네". 왕위에 즉위 때 그 이름을 "삼위 일체의 권능"이라는 뜻의 "하일레 게브르 셀라시에"로 개명했다. 사실 이 이름도 정식적으로는 "삼위 일체의 권능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유다 지파의 사자"라는 긴 이름이다.


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말은 요한 계시록에서 구세주가 입고있던 옷에 기록된 말로, 하일레 게브르 셀라시에 자신이 "메시아"라고 행동하려고 한 증거이다.


당시는 제국주의 시대, 에티오피아 제국은 서구 열강의 침략에 저항하는 유일한 흑인 제국으로 전세계에서 존경을 받고 있었다.


특히 자메이카는 "흑인의 왕이 탄생 아프리카의 구세주가 되어 흑인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한다"는 메시아 사상 "라스터 파리아니즘"이 신앙되어 있었으며, 하일레 셀라시에 야말로 흑인의 구세주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5. 제로니모(1829~1909, 개명전 : 고야스레이)


개명이유는 불명이다.

시팅 불, 테 쿰세, 크레이지 호스 등 인디언 전쟁의 영웅들은 많이 있지만, 제로니모도 유명한 인디언 정착민을 위협했던 아파치 족의 대 전사이다.


"제로니모"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인디언스럽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은 그의 수많은 예명 중 하나로, 본명은 고야스레이(Goyathlay)라고 한다.


고야스레이는 "하품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것을 믿으면 어린 시절, 그는 대범하고 의젓한 성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1858년에 가족이 멕시코 인들에게 살해당한 제로니모는, 멕시코에 복수를 맹세하며 사나운 전사가되었다.




인디언에게 이름은 신성한 것이며, 함부로 타인에게 가르치는 것도 아니었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그의 이름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제로니모라는 이름의 정확한 출처는 알려져 있지 않다.


6. 호찌민(1890~1969, 개명전 : 응우옌 아이꾸옥)


중국에 밀입국 할 수 있게 중국식으로 개명...


베트남 독립의 영웅 호찌민도 자주 이름을 바꿨다. 아명은 응웬싱 군이라고 하지만, 파리, 모스크바, 광동 등 세계를 방랑하면서 독립 조직의 공작 활동을 계속하는 가운데, 항상 가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응우옌 아이꾸옥"이라는 이름으로 "애국자 구엔" 같은 의미라고 한다.


1942년 응우옌 아이꾸옥은 중국 공산당과 연락하기 위해 "호찌민"이라는 가명으로 북 베트남에서 중국으로 밀입국을 시도. 그러데 바로 중국 국민당에 체포되어 버려, 그 후 약 2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1944년에 그는 베트남으로 귀환하지만, 꽤 괴로운 경험이었음에 틀림없지만, 중국과 관계를 중시하는 자세를 보이기위해 호찌민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게 된 것이라는....


7. 판초 비야(1878~1923, 개명전 : 도로테오 아랑고)


산적단에 들어가 개명.


멕시코 혁명의 영웅으로 치와와의 전설적인 의적 판초 비야는, 지금도 멕시코 인에게 인기있는 인물.


처음에는 보잘것 없는 산적의 두목이었던 비야는, 독재자 디아즈에 저항하는 혁명가 프랜시스 마데로에 감동을 받아, 멕시코 국가와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바치기로 맹세. 


비야의 본명은 도로테오 아랑고이면서 왜 판초 비야라고 자칭했는지 몇 가지 설이있다.


하나는 비야의 이름은 그가 죽인 깡패의 이름이라는 설.


도로테오가 16세가 되었을 때, 로페즈 네구레테 가족이라는 도둑에 속해있었던 판초 비야는, 깡패가 그의 12세의 여동생을 강간하려고 했다. 도로테오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남자를 총으로 죽였는데, 이대로 내버려두면 산적이 보복을 해올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도로테오는 자신이 죽인 남자의 이름을 가지고 산으로 들어가 산적의 두목이 되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산적 두목의 이름이 판초 비야라는 설.


젊은 도로테오 소년은 16세때, 농장주와 싸움을 하고 홀연히 산으로 잠적. 판초 비야라는 사람이 수령으로 있는 산적단에 합류. 후에 산적단은 경관대와 전투를 치렀는데, 수령 판초 비야는 총살되어 버린다. 그래서 도로테오는 "2대째" 판초 비야의 이름을 달고, 괴멸 직전의 산적단을 이끌게 되었다는.


어쨌든, 원래 판초 비야라는 사람은 따로 있었던것이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