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렌스 매디슨 댈리(1865~1904년)는, 미국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의 조수를하고 있던 유리 불기 직공이다.
당시, 자신의 손을 실험대로하여 X선관 장치의 개발에 협력했다. 아래의 사진은 방사선 피폭에 의해 종양이 생긴 댈리의 손이다. 클라렌스 매디슨 댈리는, 스스로 X선관 장치의 실험대가 되었지만, 손에 궤양이 생겨버렸다.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손을 자르며 끊질긴 치료를 시도했지만, 그 보람은 없었다.
진행성 암에 의해 39세의 나이로 사망. 댈리의 사망 후 얼마안있어, 에디슨은 X선 연구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 에디슨이 기록한 X선 실험의 악영향
1895년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에디슨은 텅스텐 산 칼슘을 이용한 형광 투시 장치의 개발에 임했고, 댈리와 형제 인 찰스는 그 조수를 맡고있었다.
에디슨의 투시 장치는, 시안화 백금 바륨을 이용한 엑스레이 장비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당시의 X선 수준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되고 있었지만, 에디슨은 "X선이 내 조수 인 미스터 댈리에 어떤 해로운 영향을 미쳤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1900년까지 방사선의 영향으로 클라렌스의 손과 얼굴에 궤양이 생겼고, 일을 쉬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1902년, 왼쪽 손목의 궤양때문에 몇번이나 피부 이식을 하고 치료를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고, 급기야 왼손을 절단해야만했다. 오른손도 네 손가락을 절단하지 않으면 안되게되었다.
이렇게까지해도 댈리의 악성 종양의 진행을 멈출 수 없어, 손뿐만 아니라 팔꿈치와 어깨를 몽땅 절단했지만...결국은 사망하게 되었다.
댈리는 방사선 실험의 영향으로 최초로 사망한 미국인이되었다.
이 결과, 토머스 에디슨은 X선 연구를 멈추게되었다. 1903년 에디슨은 "나에게 X선 이야기는 하지 말아줘. 그것은 공포를 만든것 같다"라고 말했다는...
한편, 에디슨은 실험에 함께 참여하고 있었지만, 방사선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던것 같고, 1931년 10월 18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당뇨병이라고 한다.